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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리포트] FTA 체결 집착 말고 내실있는 통상정책 세워야

이시욱 2017/11/0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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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리포트] FTA 체결 집착 말고 내실있는 통상정책 세워야

이시욱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나 통상 문제를 바라보면 세계 열강의 각축장이 됐던 구한말의 우리 역사를 다시금 되뇌게 된다.

 

트럼프 발 미국의 보호주의 무역정책도 기실 ‘역사의 순환성’이라는 가설에 어긋나지 않는다. 미국 25대 대통령인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는 19세기 후반 미국 노동자를 보호하고 국내 산업을 육성하는 방안으로 고율의 수입 관세 부과와 해외 이민의 제한을 주장했다.

 

그가 ‘보호주의의 나폴레옹’이라 불린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정책 기조는 매킨리 정책의 현대판 귀환이라 하겠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초래된 일련의 통상마찰을 독불장군이자 변덕스러운 개인의 성향문제라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의 보호무역주의 통상기조는 지난 수십 년간의 경제여건 변화가 투영된 시대적 산물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국제사회는 시장경제의 기능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던 시기였다.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시장실패보다는 정부실패의 폐해가 크다는 인식에 따라 작은 정부, 탈규제, 민영화, 다자 간 무역질서의 강화 등을 강력히 추진했다.

 

하지만 ▶선진국 내 중산층 실질소득 정체와 소득 불평등 확대 ▶남미·아프리카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 국가의 정책실패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경험하면서 정부의 시장개입을 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요 시험장이었던 세계무역기구(WTO) 다자무역체제의 답보나 유럽연합(EU)의 쇠퇴도 산업정책이나 보호무역주의 확산의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미국도 이미 오바마 정부 때부터 보호무역주의를 가속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정부는 2015년 무역특혜연장법을 제정해 외국제품에 반덤핑관세를 손쉽게 부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 결과 중국 및 한국산 철강제품 등에 대한 고율의 징벌적 관세 부과 사례가 급증했다.

 

 

이처럼 역사의 추는 시장의 역할을 중시하던 기조에서 점차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확산도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상당 기간 국제사회가 경험해야 할 통상 현실이다. 미국 대선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일반 대중은 통상전문가와 달리 국제무역이나 해외이민의 확대가 소득 불평등 확대, 실질소득 정체, 제조업 일자리 감소 등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보호무역주의의 파도를 넘을 수 있는 효과적 통상정책 추진체계나 중장기 정책대안을 마련해 놓고 있을까. 몇 가지 측면에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첫째, 한국 통상정책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자유무역협정(FTA)정책, 특히 FTA 교섭 성과에 치중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통상정책의 성공 여부는 국내 경제 기여도에 대한 체계적 고려보다는 얼마나 많은 국가와 FTA를 체결했는가에 의해 판단됐다.

 

2013년 발표된 ‘새 정부의 신통상 로드맵’에서도 이런 문제점이 제기된 바 있다. 그 결과 산업통상자원부로 통상교섭·이행 및 국내 대책 업무가 일원화됐다. 그러나 여전히 FTA를 체결하면 자동으로 교역이나 투자가 증가해 국내 경제에 기여한다는 막연한 환상을 갖고 통상교섭을 진행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통상정책은 상품·서비스·자본·노동·기술 등의 국가 간 이동을 촉진하는 국내 제도 및 정책수단을 통칭한다. 따라서 통상정책은 무역촉진, 직접투자, 이민, 경제협력 등 다양한 정책요소가 국내 산업발전과 유기적으로 연계돼 시너지를 창출하도록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기획 하에서 시행돼야 한다.

 

미국은 범정부 수출촉진 대책기구인 무역촉진조정위원회(TPCC)에서 산업 전반의 수출촉진 목표, 정책 시행 및 지원 방향 등을 제시하는 국가 수출전략보고서를 발간해 수출지원의 체계화를 도모하고 있다. 아울러 2010년에는 대통령 직속 기구인 수출촉진 각료회의를 신설했고, 트럼프 정부에서도 수출 확대 및 제조업 일자리 창출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백악관 내에 무역제조업정책국을 신설해 운영 중이다.

 

한국은 대외경제장관회의가 미국의 무역촉진조정위원회와 유사한 기능을 하지만 참여 부처나 기관이 상대적으로 한정적이라 전 산업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정책 수립 및 시행에 한계가 있다. 우리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매년 발표하는 무역통상진흥시책의 경우에도 체계적인 통상정책의 목표와 지원방향 제시보다는 부처별 지원사업을 병렬적으로 소개하는 데 그치고 있다. 통상전문가가 보기에는 도대체 정부가 통상정책을 중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려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셋째, 현재 14개 정부부처에서 총 1조6000억원 규모로 시행되는 수출지원사업도 효과 제고를 위한 대대적인 수술이 절실하다.

 

사업내용이나 지원대상 측면에서 중복성이 높은 사업이 적지 않고, 지원 효과가 단기에 불과한 전시회나 수출상담회 등에 대한 지원체제를 답습하고 있다.

 

단기 수출 성과지표 충족을 위한 보수적인 지원 행태로 인해 신규 유망수출기업의 발굴보다는 기존 지원수혜기업에 지속적·중복적으로 지원되는 경향도 있다. 필자가 최근 수행한 한 연구에 따르면 차류가공업을 하는 모 중소기업은 2015년 한 해에 농림축산식품부, 산업부,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 등에서 총 17개나 되는 지원사업들을 중복 수혜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늘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문제에 관해 어떤 얘기를 풀어 놓을지 주목된다. 어떤 경우에도 그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보다 중장기적인 통상정책의 시각에서 의연한 자세로 한미 FTA 재협상 등 양국 간 통상현안을 풀어가야 할 것이다.

 

성장동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신정부의 다양한 노력에 비해 통상정책의 빈자리는 너무 커 보인다. 통상정책은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을 직시하고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통상정책체제의 확립에 노력하기를 기대해 본다.


문의: KDI 홍보팀 김은총 044-550-4034, capkec@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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