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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만 바꿔 달면 소득 주도 성장의 실패가 가려지는가

윤희숙 2018/07/24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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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간판만 바꿔 달면 소득 주도 성장의 실패가 가려지는가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요즘 정부와 여당이 포용적 성장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며칠 전 방송에 출연한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많은 선진국이 추구하는 포용적 성장과 소득 주도 성장이 일맥상통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파장 속에 소득 주도 성장이 인심을 잃는 마당에 다른 나라도 널리 사용한다는 포용적 성장으로 전환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에 대한 반응도 대략 긍정적이다. 포용적 성장이 별문제 없이 받아들여지는 방향인 이상, 이를 표방하게 되면 우리 정부가 적어도 아주 궤를 벗어난 정책은 지양할 것이니 '소득 주도'를 고집하며 경제 체질을 훼손하는 것보다 낫다고 안도하는 듯하다. 그러나 현재로서 그런 희망은 섣부르다. 무엇보다 포용적 성장은 잘 확립된 이론 체계가 아니라 '모든 이가 성장에 참여할 수 있는 성장 방식'이라는 의미의 느슨한 수사(rhetoric)에 불과하다. 뚜렷한 정의도, 정해진 내용도 없다. 따라서 포용적 성장을 추구한다는 말은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관건은 그 구체적 내용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인데, 여기서 정부의 역량과 식견이 드러나게 된다.

 

소득 주도 성장을 생각해보라. 이것 역시 체계화된 개념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열린 수사이다. 이를 처음 들었을 때 많은 이들은 '소득이 증대되도록 일자리 창출에 힘써 성장으로 연결시킨다'는 뜻인가 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실제의 내용은 인위적으로 시장의 임금을 올려 성장을 이루겠다는 경악스러운 계획이었다. 우리처럼 최저임금 제도를 취약 근로자를 위한 불가피한 개입이 아니라 시장 임금 전반을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나라는 국가와 시장이 잘 구분되지 않아 온 남미 지역에나 집중돼 있을 뿐 선진국 중에는 찾을 수 없다.

 

시장에서 임금이 결정되는 과정에 작동하는 수많은 요인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특정 지점을 대폭 비틀어버리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시장의 복잡성을 깊이 이해할수록 정부 개입이 가져올 효과를 조심스럽게 가늠하고 시장 기제를 함부로 흔들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고도로 발전한 시장을 갖추었음에도 시장에 대한 정부의 이해는 선진국형이라 보기 어렵다.

 

소상공인의 고충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 아니라 상가임대차나 프랜차이즈 계약의 문제점, 카드 수수료 때문이라는 정부의 강변 역시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과 그에 기반한 용감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올해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닌 이상, 이것을 사전에 고려해 최저임금 인상 폭을 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스스로의 실책을 거하게 실토하는 것과 같다. 게다가 화살을 구조의 문제로 적극 돌리는 것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포용적 성장이 선진국에서 널리 쓰이는 데다 소득 주도 성장과 비슷하다고 애써 강조하는 것은 그간의 정책 방향이 딱히 특이하지도 잘못되지도 않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는 무언가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신호이다. 뭐라도 바꿀 생각이 있다면, 간판을 바꾸는 김에 무엇을 쇄신할지를 뚜렷이 알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지금은 정반대로 예전 간판과 새 간판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니 바꿀 것이 없다는 선언이나 진배없다.

 

더구나 지금 정부와 여당은 포용적 성장을 단순히 '분배를 강조하는 성장 전략'이라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면서 소득 주도 성장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가 언급하는 2009년 세계은행 보고서 '포용적 성장이란 무엇인가'는 재분배를 과도하게 강조하기보다 일자리 접근성 등 건설적 포용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또한 포용적 성장의 대부 격인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해밀턴 프로젝트는 시장 진입 이전에 상당 부분의 불평등이 결정된다는 점에 주목해 양질의 교육에 접근할 기회 형평을 강조하는 한편, 임금 격차의 주원인으로 노동시장 내 독점적 구조를 지목하고 있다. 이 중 어느 하나도 임금을 억지로 올려 취약계층을 떨어내 가면서까지, 고용이 안정된 근로자의 임금만 올리는 우리 정책과 '일맥상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의 결과로 나타난 분배를 개선하되 시장 메커니즘 자체에는 개입하지 않으려는 접근은 우리와 현격히 대조된다.

 

소득 주도건 포용적 성장이건 그 바탕에는 시장에 대한 이해와 기본을 지키려는 자세가 깔려 있어야 한다. 어떤 간판을 내걸든 우리 상황에 맞는 성장 전략을 신중하게 담기를 기대한다.


문의: KDI 홍보팀 김은총 044-550-4034, capkec@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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