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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의 정책과제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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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신광식(申光湜)
  • 발행일 2000/12/30
  • 시리즈 번호 2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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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경제력의 집중과 남용이라는 관점에
서 재벌의 구조와 행태에 대하여 많은 비판이 제기되어왔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중반부터 재벌정책 내지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이 본
격 시행되어 재벌의 소유구조, 경영방식, 사업영역, 투자, 금융, 거래
활동 등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제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연이은 도산과 부실화를 시작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하였고, 이를 계
기로 재벌 구조와 행태상의 문제들이 새삼 부각되어 재벌개혁이 위
기극복의 핵심과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기존 재벌정책의 성
과와 유용성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서, 재벌개혁 노력은 이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평가 위에 이루어져야 한다.

기존 재벌정책의 한계는 경제력(집중)과 경쟁·거래의 (불)공정성
이라는 개념적 기반의 결함과 제약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경제력집
중은 재벌에 의한 일반집중, 시장집중, 사업다변화, 소유·지배권 집
중 등을 포괄하는 복합적 개념으로서 재벌문제를 인식하는 틀이 되
어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분석의 틀이 되는 이론체계가 없고 그 구
성요소들간에 상충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의거한 정책은 경
제력집중의 제 현상을 완화하려는 대증요법적 규제로 나타나면서
목표, 수단 등에서 상충하는 정책적 혼란상을 보이게 된다. 경쟁·
거래의 (불)공정성 개념은 기업행위가 시장성과(가격, 품질, 서비스
등)와 소비자후생에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경쟁·거래사업자에게
미치는 부정적 효과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 결과 공정경쟁·거래의
확립을 지향하는 정책은 객관적·분석적 판단기준을 결여한 채 자
의적으로 집행되면서 반경쟁적·반소비자적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경제력의 집중과 남용에 따른 다양한 폐해가 재벌 구조와 행태상
의 문제로 인식되어왔으나, 재벌과 경제력집중 문제의 根底에는 재
벌의 독점적 시장지위와 지배·경영권 독점이 있다. 기존 사업영역
에서 지속적으로 超競爭的 利潤을 확보하는 기업만이 상당한 富를
축적하고 사업영역과 규모를 확대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궁극적으
로 경제력집중은 장기간에 걸친 독점력 유지·행사의 결과이다. 경
제력의 남용으로 비재벌 기업들이 시장에서 배제되고 경제력집중이
심화된다고 하나, 수직적 제한, 내부거래, 가격책정 등 거의 모든 기
업행위가 경쟁을 저해하고 시장을 독점하는 수단이 될 수 있으려면
행위자의 독점력이 전제되어야 하며, 경쟁제한의 실제적 가능성과
정도는 이미 보유하고 있는 독점력의 크기에 달려 있다. 더욱 중요
한 점은 재벌의 시장독점 및 경영권 경쟁과 위협의 부재로 자원배
분·활용상의 왜곡과 비효율, 지배주주의 경영 전횡과 태만, 부실경
영 등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그간 재벌정책은 여러 가지 행태규제를 통해 재벌의 확장을 억제
하고 경제력집중의 제 현상을 완화하고자 하였을 뿐 독점(력)을 축
소·제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과도한 사업다변화와 소유
경영체제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인식하에 독점(력)은 문제시되지 않
은바, 재벌의 독점적 시장지위와 경영권은 방치되거나 심지어 조장
되기까지 하였다.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하에 재벌들의 시장지위와 경영권이 보호되
었고, 수평적 규모확대와 수직계열화의 유도·촉진에 의해 독점력이
유지·강화되었다. 재벌의 독점적 지위와 독점화 행태에 대한 경쟁
정책적 규율은 엄격하지 못하였으며, 규제개혁에 있어서도 기존 기
업들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한 행정절차적 규제의 간소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소유경영체제의 결함으로서 오너 경영자의 전횡과 독단
등이 문제로 부각되었지만 기업소유가 분산될수록 대리인 문제가
심각해져 경영 인센티브의 왜곡을 막기 위한 시장의 힘과 법·제도
적 장치가 더욱 중요해진다는 점은 간과되었다. 기업 이해관계자들
의 권리가 심히 제한되어 경영감시·견제의 법적 장치들이 유명무
실한 상황이 지속되었고, 기업과 경영자의 명백한 불법·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엄정한 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본시장 규제, 진
입·사업영역·소유지분의 제한, 산업정책적 개입 등으로 기업인
수·합병이 억압되었으며 외국인투자도 엄격히 규제되었다. 재벌의
독점적 시장지위와 경영권의 과보호는 비용상승과 경영효율의 저하
를 초래하면서도 이들에게 고성장을 추구할 강한 인센티브를 갖게
한바, 그간의 광범위한 재벌정책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재벌 구조와
행태상의 제 문제는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못하였다.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부각된 재벌문제 및 그 해소를 위한 정책방
향은 소위 기업구조개혁 '5+3' 원칙 내지 과제로 나타났다. 전반적으
로 재벌개혁은 계열사간 자본·재무·거래상 연계를 축소·단절하
고 독립·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한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으며, 기업
의 지배구조와 경영방식에 대한 새로운 문제인식과 시각을 내포하
고 있다. 재벌개혁과 구조조정을 위한 다각적인 시책이 추진되어 경
영투명성 제고, 경영책임의 강화, 기업인수·합병의 활성화, 외국인
투자 자유화, 퇴출의 원활화, 금융감독 강화 등 시장기능을 강화하
기 위한 법·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재벌의 핵심 문제와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는 못한 상태이다. 먼저, 기
업구조개혁을 위해 추진된 법·제도적 개선사항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재벌개혁이 위기관리
차원의 기업구조조정과 맞물려 시급히 추진된 결과 기업의 재무구
조 개선, 사업구조 개편, 지배구조와 경영방식의 개선 등이 시장의
힘이 아니라 정부의 개입과 압력을 의해 유도된바, 정부의 경제적
역할과 영향력의 확대는 진정한 시장경제의 발전을 저해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간의 재벌정책의 경험 및 경제분석은 기존의 행태규제적 접근
법으로는 재벌 구조와 행태상의 제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어
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재벌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장
기구가 원활히 작동하는 경제의 틀을 마련하고 시장기능과 경쟁을
강화하는 것이 긴요하다. 재벌과 경제력집중의 제 문제는 시장기구
의 원활한 작동을 뒷받침하는 법제의 확립과 경쟁적 시장의 힘에
의해 해소될 수 있다.

먼저, 어떤 정책이든 그 기초개념과 목적에 의해 정책의 원칙과
방향, 과제, 내용과 수단 등이 모두 결정된다는 점에서 정책의 개념
적 기반과 목적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경제력(집중)과
경쟁·거래의 불공정성 개념은 각각 독점력과 경쟁제한성의 개념으
로, 그리고 경제력집중의 완화와 경쟁·거래의 공정화라는 정치·사
회적 성격의 목적은 경제효율 내지 소비자후생의 증진이라는 목적
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경제분석에 의거한 합리적인 정책
수립·집행이 가능해지며 정책의 실효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독점력이 재벌과 경제력집중 문제의 근원이 되는 동
시에 경제이론에 의해 정책방향과 기준이 제시되는 개념이기 때문
이다.

재벌정책은 경쟁을 촉진하고 독점을 축소·제거함으로써 시장경
쟁의 힘에 의해 재벌의 구조와 행태를 개혁하는 정책이 되어야 한
다. 재벌에 대한 여러 가지 직접적 규제는 시장규율이 미약한 상황
에서 과도한 재벌확장과 경제력집중을 완화하는 데 유효할 수 있다.
그러나 재벌규제는 시장기능과 규율을 대체하는 것이므로 오래 지
속되면 시장의 법·제도적 기반의 발전과 시장의 역할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많다. 위기 이후 시장기능의 활성화에 긴요한
많은 조치들이 취해졌으므로 이제는 재벌정책이 규제에 의해 시장
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기능과 힘을 보완·조성하는 방향
으로 나가야 한다. 경쟁압력과 시장의 힘이 원활히 작동하는 경제환
경을 조성해야만 실질적으로 재벌의 인센티브를 바꾸고 구조와 행
태를 변화시켜 경제적 성과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재벌에 대한 기존의 규제적 접근을 경쟁정책적 접근으로 전환해야
하는바, 그 핵심과제는 경쟁제한적 규제를 축소·철폐하고 공정거래
법의 경쟁법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집중 시장구조와 재벌의 독점적 지위는 경제적 규
제에 의한 경쟁제한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경쟁의 활성화를 위해서
는 정부의 경제적 역할을 재정립한다는 시각에서 규제개혁을 추진
하여 자원배분에 있어 시장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인허가,
사업영역제한 등 정부가 설치한 진입장벽을 철폐하여 잠재 경쟁을
활성화하고 市場競合性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벌의 과도한
다변화를 억제하고 대형화·전문화를 유도한다는 이유로 진입을 통
제하거나 사업영역을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기존 기업들의 독점력
을 보호해줌으로써 경제력집중을 유지·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시장기능과 경쟁의 강화를 위한 규제개혁의 전제는 정부의 정보적
우위와 시장기구의 불신에 기초한 산업정책적 발상과 개입에서 탈
피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은 시장경제의 작동원리인 경쟁을 보존·강화하기 위
한 경쟁법인 동시에 재벌의 확장과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재
벌규제법이기도 하다. 그간 재벌의 출자, 채무보증, 거래 등에 대한
규제는 강화되어온 반면 재벌의 독점적 지위와 행태에 대한 경쟁법
의 적용은 엄격하지 못하였다. 재벌규제는 과도한 재벌확장을 막는
수단이 되어왔으나 직접적으로 시장구조와 경쟁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재벌의 인센티브를 바꾸고 행태를 개선하는 데
는 한계가 있다. 또한, 계열사간 출자, 채무보증, 내부거래 등의 폐
해를 막기 위해 이런 행위들을 규제해야 한다면 그 기반이 되는 독
점적 시장지위와 계열구조의 강화를 막고 이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
하나 그러한 법적 기반과 수단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기업결합
규제도 다양한 정책적 고려로 인해 엄격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존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집중 억제 차원의
재벌규제를 경쟁제한성에 입각한 재벌구조와 행태의 개선시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구조적 경쟁정책을 활성화하여 다변화보다는 시장지
배와 독점화를 방지·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태규제만으로 재벌
의 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기업결합 규제와 독점완화·해소조치 등 경쟁정책적 수단을 활용
해 재벌의 비효율적·남용적 행위의 기반이 되는 계열구조를 개선
하고 독점적 지위의 형성·강화 및 남용을 막아야 한다. 계열회사의
취득·편입을 기업집단에 의한 기업결합으로 간주해 경쟁제한성의
관점에서 선별 심사·규제하는 한편, 장기간 경쟁 위협에서 절연된
채 독점력을 남용하는 기업을 분할할 수 있는 법적 절차를 마련하
고, 계열구조 자체를 개선하는 방안으로서 기업집단의 독점력 남
용·강화의 원천이 되는 기업에 대하여 엄격한 기준하에 계열분리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구조조정과정에서
기업결합 등으로 여러 분야에서 독점적 구조가 심화되어 소비자후
생과 경쟁력의 저하가 심히 우려되는바, 향후 이런 분야에서 국내외
경쟁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경우에 기업분할조치는 경쟁을 도입하여
독점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정책수단이 된다. 또한, 계열분
리조치는 기업집단의 계열구조(예컨대, 계열 독점기업이나 금융회
사)를 이용한 위법한 독점화와 확장을 막기 위한 구조개선 수단이
된다. 또한, 지주회사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복잡한 계열구조와 불투
명한 경영체제를 지주회사를 통한 간명한 계열·지배구조로 유도하
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쟁적 시장환경의 조성을 위해서는 기업결합에 대한 경쟁정책적
심사를 강화하여 독점력의 창출·유지·강화를 막는 것도 매우 중
요한 과제이다. 기업인수·합병에 대한 산업정책적 발상과 개입을
배제하여 경쟁정책적 기준과 목적에 충실한 기업결합 심사가 이루
어지도록 해야 한다.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야
하며, 효율성 증대효과가 큰 경우와 회생이 불가한 회사에 대한 예
외 인정은 엄격한 기준하에 예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경쟁제한
의 우려가 큰 기업결합의 조건부 승인에 있어서는 시장점유율이나
공급가격 등에 대한 지속적 행태규제를 피하고 독점력의 생성·강
화 자체를 억제할 수 있는 조건을 부과해야 한다.

법집행의 기준과 절차를 개선하여 공정거래정책의 실효성을 제고
해야 한다. 경쟁과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의 관점에서 사안의
중요성을 판단하여 사건을 선별하고 정책자원을 배분·활용해야만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단순한 거래상 분
쟁이나 경쟁자간 갈등의 해결을 위한 사건처리를 지양하고 경쟁과
정을 보존·강화하여 시장성과를 높이기 위한 사건의 처리에 정책
자원을 집중시켜야 한다. 私訴를 활성화하여 정책당국의 한정된 법
집행능력을 보완하고 위법행위에 대한 감시·억지효과를 제고하는
것도 필요하다. '손해배상청구권의 재판상의 주장제한' 조항을 폐지
하고, 집단소송제를 도입하여 소송의 인센티브를 높이며, 위법행위
로 인한 피해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 행위의 금지를 청구하는 소송
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적 법집행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재벌 구조와 행태상의 많은 문제들이 정부주도·관리의 경제운영
과정에서 배태되어온 것인 만큼, 정부의 재량적 자원배분권한을 줄
이고 시장기능과 규율을 강화해야만 제벌의 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관치경제의 청산을 위해서는 그 법·제도적 기반의 개혁이 불
가피하다. 시장기구의 원활한 작동은 정부의 재량적 규제·개입의
제한 그리고 계약, 재산권 및 민간의 對政府 權利의 집행을 위한 법
적 기반과 제도의 확립을 전제로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규제와 개입을 위한 경제행정법령을 축소·철폐
하고 私法的 規律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긴요하다. 권리법령에 의
거한 경제활동의 規律이 더 효율적인 분야를 파악해 행정법령의 공
적 집행을 권리법령의 사적 집행으로 대폭 대체함으로써 정부의 통
제와 개입이 아니라 경제주체들의 권리행사와 책임부과를 통해 경
제활동이 규율되도록 해야 한다. 私的 自治의 원칙이 지배해야 할
영역에서 이해관계자들의 권리와 책임이 합리적이고 명확하게 규
정·배분되어 있지 않거나 정부개입으로 권리·의무관계가 변질되
고 정당한 권리의 행사가 제약된다면, 시장규율은 작동할 수 없고
시장을 통한 경제활동의 효율적 조정·통합도 이루어지기 어렵다.

법의 공적 집행에 의거한 경제활동의 규율은 외부효과 등으로 사
적 권리행사의 인센티브가 충분치 못한 경우로 집중되어야 한다.
뇌물수수, 내부자 거래, 탈세, 담합, 사기 등에 대한 형사적 법집행
이 강화되어야 한다. 기업과 경영자의 위법·불법행위에 대한 미온
적 법집행은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증폭시키면서 시장경제체
제의 건전성과 안정성을 잠식하게 된다. 법 제정·집행의 투명성·
중립성·책임성 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법의 재량적
제정·집행을 제한하는 법적 절차를 확립하고, 민간이 정부행위를
문제삼을 수 있는 법적 권한 및 행정조치에 대한 사법적 검토의 범
위를 확대하여 정부행위의 투명성과 법적 책임성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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