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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와 한국의 혁신정책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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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김주훈(金周勳)
  • 발행일 2004/10/22
  • 시리즈 번호 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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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 배경과 목적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산업자본주의는 100여 년간 대량생산체제를 기반으로 발전하여 왔으나 근래에 들어 지식정보화와 글로벌화에 기초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과정 중에 있다. 과거 산업자본주의에서는 일국 경제 내에서 지식과 생산이 결합된 채 경제발전이 추진되었다면 새로운 경제시스템에서는 기존 선진공업국들이 지식과 정보를 장악하고 생산은 개도국으로 재배치하면서 이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글로벌화가 추구되고 있다.

개발연대에 우리 경제가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산업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강렬한 의지와 노력이 결집된 결과이겠지만 그 배경에는 생산비가 높은 선진국 시장에 비용우위의 강점을 지닌 우리 상품을 수출하려는 국가적 전략이 주효한 점이 크게 작용하였음도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의 지식과 개도국의 생산이 결합되는 새로운 경제환경을 맞아 기존의 경제발전전략으로는 더 이상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 지식창출시스템이 빈약하고 개도국에 비해 생산비가 높은 우리의 경제적 여건으로 인하여 우리 경제가 자칫 고립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1980년대에 전개되었던 선진국 기업들의 글로벌화 추이, 즉 글로벌 생산체제로 이어지고 있는 선진국, 특히 미국의 새로운 산업구조 개편 배경과 추진 실태, 그리고 이러한 산업구조 개편이 동아시아의 생산기능과 결합되는 과정을 추적하여 우리 경제가 글로벌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긴밀한 연계를 이루고 있었는지를 점검해 보고 선진국 기업의 글로벌화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요인을 평가해 보고자 하였다.

2. 주요 내용

세계화가 전개되면서 선진국은 지식에 기반을 두는 산업활동에 치중하는 한편 단순생산은 개도국으로 이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산업활동의 지리적 재배치는 각국에 걸쳐 산재된 기능들을 통합 조정할 수 있는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다국적기업에 의한 글로벌 네트워크 조성에 따라 세계 각 지역별로는 R&D활동, 숙련생산, 단순조립생산 등에 특화된 지역거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 지역거점의 핵심역량은 글로벌 차원에서 특화된 기능이 되겠지만 지역차원에서는 그 지역의 핵심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보완적 주변기능이 부가되는 지역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화된 경제에서 국가경쟁력은 글로벌 차원의 국제분업에 참여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지역클러스터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는가로 집약되고 있다.

1970년대에 들어 미국기업들의 경쟁력이 전산업에 걸쳐 약화되었다. 그 결과 1980년대에 격심한 구조조정이 추진되면서 산업의 글로벌화가 추진되는 한편 새로운 산업인 IT산업이 태동되어 1990년대에 들어서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구조로 모습이 바뀌었다. 현재 미국산업에서는 Microsoft, Intel, Cisco, Oracle 등 새로운 세대의 기업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들 신흥기업은 과거 대기업과 성격을 달리 하고 있다. 가치사슬을 따라 수직적으로 통합되어 완제품에서 부품에 이르기까지 전품목을 사내생산하던 과거의 수직통합형 대기업과 달리, 이들 신흥기업들은 가치사슬(value-chain)중의 일부에 특화한 전문기업들이다. 이와 함께, 기업간 국제분업을 통해 세계 전역에 걸쳐 분포된 연관기업들과 하나의 통합된 가치사슬을 형성함으로써 자신들은 핵심역량인 기술적 전문성에 특화할 수 있었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 IT업체들로서 이들은 창업단계부터 동아시아 생산업체들을 참여시키는 글로벌생산체제를 갖추었다. 글로벌화가 추진되지 않았더라면 미국 IT산업의 구조조정은 어려웠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80년대에 나타난 이들 전문기업들의 글로벌 전략은 1960~70년대에 GE 등의 전통적 대기업들이 동아시아에 진출하였던 형태와 상당히 다르다. 과거 미국 대기업들이 시장진출과 저임금을 겨냥하여 노동집약적 조립생산공정을 동아시아로 배치하였던 것에 비해 이들 전문기업들은 창업초기부터 일괄 생산기지를 동아시아에 설립하여 동아시아 자회사들이 생산을 전담하게 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 동아시아에서 생산협력업체가 모색되었을 때 한국 또한 후보지로 검토되었으나 한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생산분업이 강하게 연결된 폐쇄적 산업구조를 이루면서 재래식 전자산업에 집중하고 있었으므로 신흥 IT업체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 그에 비해 일찍부터 외국기업의 투자를 정책적으로 유도하였던 싱가포르나 중소 부품업체들이 발달한 대만은 손쉽게 미국계 IT업체들의 동아시아 생산기지로 채택될 수 있었다. 싱가포르는 외국기업의 투자유치에 그치지 않고 단순 생산공정은 말레이시아, 태국 등으로 이전을 유도하여 자국 생산기지를 고임금화된 경제구조에 적응할 수 있는 고부가형의 산업구조로 전환시키는 기회로 활용하였다. 대만 또한 1980년대 후반부터 급증하는 임금상승 압력에 대처하기 위하여 중국대륙으로의 생산이전을 추진하면서 미국 IT기업 및 미국에서 활동중인 대만출신 벤처기업가들을 적극 유치함으로써 산업구조가 고도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급증한 대만 및 홍콩의 직접투자에 의하여 중국의 산업화 기반이 성공적으로 조성되고 이를 기반으로 1990년대 들어 일본, 한국 등의 직접투자가 활성화되면서 동북아지역에서는 국제적 생산분업체제가 형성되었다. 중국은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여 부품 및 원자재 등을 조립생산하여 미국 등 동북아 역외지역으로의 수출에 집중하고 일본, 한국, 대만 등은 이에 필요한 기술집약적 부품 및 원자재를 공급함으로써 동북아지역에 역내분업생산체제가 조성될 수 있었다.

세계경제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되면서 다국적기업은 전세계에 걸쳐 각 기능별로 가장 경쟁력 있는 지역들의 산업활동을 선택하여 이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글로벌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지역은 글로벌 차원의 국제분업에 참여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각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글로벌 차원의 국제분업에 참여 가능한, 경쟁력 있는 지역들을 육성하는 것을 산업정책의 가장 우선적 과제로 택하고 있다.

지역의 경쟁력, 특히 혁신을 창출하는 능력은 지역내에 동종 및 연관업종 기업들이 다수 밀집되어 상호 경쟁을 벌이면서도 기업간은 물론 산학간 협력이 활성화되어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을 때 가장 성과가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의 산업정책은 종래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한 거대기업의 육성 및 이를 위한 수입규제 등과 같은 시장보호에서 벗어나 국제분업에 편입될 수 있는 기회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 개방을 실시하고 기업의 혁신능력을 높이기 위한 산학협력 인프라 조성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지역별로 특정 산업의 기업체들 및 이와 연관된 연구기관들이 밀집되어 유기적인 지역혁신체제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역단위로 분권화된 산업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3. 결론 및 시사점

1980년대 후반부터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이 택했던 적극적 개방화 전략과 달리 한국은 외환위기 전까지 폐쇄적 구조를 지속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 본격화된 세계화 시대에도 한국의 산업발전 원동력은 개발연대부터 지속되어 온 국내 대기업 중심의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에 의존하였다. 이 시기에 한국기업들은 선진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글로벌 차원의 국제분업 확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이들 전통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였다. 선진국으로부터 도입이 어려워진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생산자동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가격경쟁력을 제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한국도 199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중국의 급속한 산업화에 힘입어 중국으로 기술집약적 부품 및 원자재를 공급하는 한편 중국 현지생산을 확대함으로써 적어도 동북아지역에서의 국제분업 조성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한국은 개발연대기간동안에는 선진국과의 국제분업에 적극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의류, 신발 및 전자제품 등 다양한 품목에 걸쳐 생산제품을 선진국에 수출하거나 선진국 기업들과의 OEM 생산을 확대함으로써 국제적 분업 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후발개도국의 산업화로 선진국과 개도국간에 분업관계가 새롭게 조성됨에 따라 국제분업에서 점하는 한국의 역할이 크게 약화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의 중국에 대한 투자 확대 및 수출 증대는 새로이 형성되는 글로벌 국제분업 구조에 중국을 통해 참여하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한국간 국제분업은 본질적으로 생산분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한국기업들이 선진국으로부터 습득하였거나 자체적으로 고도화 노력을 기울이면서 축적한 기술지식이 체화된 핵심부품 등을 중국에 공급함으로써 양국간의 분업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으로부터 기술 및 지식의 유입을 확대해 가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국에서 중국으로의 지식과 기술 유출만이 계속될 경우 한국은 공급 가능한 지식과 기술의 소진으로 중국과 국제분업 관계를 유지해 가기 어려워 질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외국기업의 국내유치를 확대해 가는 한편 유럽 및 일본기업들처럼 미국 등 선진국에 기술거점의 설립을 확대하는 등 기술 및 지식의 공급원을 확보하는 데에 우선적으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분업관계의 확대가 가능하도록 국내 경제 및 사회적 구조가 개방적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기술 및 지식의 학습과 활용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국내 지식기반체계가 고도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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