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공공투자관리센터 재정투자평가실장
공투 업무의 대부분은 보고서 집필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고서 대상이 되는 사업을 이해·분석·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은 보고서의 실질적인 내용을 채우는 것과 직결되고, 각종 대관·대민·국제협력 업무와 연구과제 수행은 대외적으로 보고서의 이해를 돕고 중장기적 품질 제고를 위한 역할을 한다.
공공투자관리센터(이하 ‘공투’)에서 수행하는 업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고, 가장 널리 알려진 ○○○은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일 것이다. 현재 KDI 홈페이지에 공개되는 예타 보고서는 국고가 투입되는 대규모 재정사업에 대한 평가보고서이고, 공공기관의 부담금이 주로 활용되는 공공기관사업을 평가한 예타 보고서도 계속해서 비공개로 출간되고 있다. 민간투자사업 평가와 조세특례에 대한 평가 등도 이뤄져 그 결과물로 보고서가 나온다. 사업유형의 구분 외에 평가유형(예비타당성조사, 타당성재조사,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등)에 따라서도 보고서가 나뉜다. 즉, 공투 업무의 대부분은 보고서 집필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고서 대상이 되는 사업을 이해·분석·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은 보고서의 실질적인 내용을 채우는 것과 직결되고, 각종 대관·대민·국제협력 업무와 연구과제 수행은 대외적으로 보고서의 이해를 돕고 중장기적 품질 제고를 위한 역할을 한다.
지난 2년 반 동안 공공투자정책실에서 관련 업무들을 맡고 도우면서 문득문득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한 편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여정이 흡사 노래 한 곡을 완창하는 과정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것도 꽤 여러 명이, 아카펠라로 말이다. 좀 더 풀어서 얘기해보면 이렇다. 곡 제목은 ‘△△△ 사업’이고 장르는 ‘예비타당성조사’, 보컬그룹은 연구진(KDI 구성원 및 외부 전문가), 검토진(검토위원, 마크맨), 관리진(소장, 실장, 부실장, 팀장, 간사), 사업추진 주체(주무부처, 공공기관, 지자체 등)로 구성된다. 곡의 특징은 정해진 악보 없이 5절 구성(진행상황 점검, 내부 중간점검, 기재부 중간보고, 내부 최종점검, 기재부 최종보고)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간혹 중간에 간주가 길어지거나(조사기간 연장) 노래가 중간에 끝나거나(사업 철회) 때때로 곡 제목이 바뀌기도 한다(사업계획 변경). 입장에 따라 노래 길이가 너무 길다는 불만도 제기되곤 한다.
세부구성을 보면, 우선 1절은 연구진의 목소리가 조심스레 채워지는 구간이다. 이때 관리진과 검토진은 향후 곡의 구성을 염두에 두고 초반 키가 너무 높지 않은지, 어떤 곡 전개가 적절할지를 고민해 부분적으로 목소리를 섞는다. 2절로 접어들면 연구진들이 확실히 1절보다 더 풍성한 가사와 화음으로 노래를 이어간다. 검토진도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보탠다. 관리진은 노래 제목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며 주된 멜로디 라인을 강조하기 위한 소리를 더한다. 3절은 통상 2절 구성의 반복이다. 중요한 차이는 사업추진 주체들의 목소리가 추가된다는 것이며, 경우에 따라 곡 해석에 대한 이견을 담아 결이 다른 목소리가 얹히기도 한다. 연구진은 곡 제목과 전개에 부합하는 방향이라면 적극 화음을 맞추고, 그렇지 않다면 스타카토 내지는 크레센도 표기를 추가한다. 도돌이표를 몇 차례 거치고 나면(몇몇 보컬들의 목소리가 갈라질 때도 있지만) 서로가 어느 정도 만족하는 노래가 울려 퍼진다. 4절에서는 곡이 더 전개되고, 5절에 다다르면 다듬어진 4절 내용이 채워지면서 노래가 마무리된다.
이상의 ‘평가론(評歌論)’은 끼워 맞춘 측면이 있지만, 나름 경험에 근거한 부분도 있다. 공공투자정책실에서 관리하는 사업들의 보고서가 인쇄돼 책상 위에 놓이는 날에는, 관리진으로서 참석했던 다섯 번의 회의장면들이 뇌리를 스치면서 마치 십 수 명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노래 테이프를 받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보고서를 집필하는 것은 연구진의 몫이고 보고서 안쪽에 이름이 기재되는 것도(외부검토위원이나 일부 자문위원을 제외하면) 연구진이다. 그럼에도 회의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해당 보고서에 대해 적극 의견을 개진하고 경우에 따라 관리진과의 논의를 거쳐 보고서 내용을 수정했던 일련의 과정이 잔상으로 남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공투 구성원들은 이러한 과정을 여러 겹으로 중첩한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겉으로 보기엔 공투 업무가 회의의 반복일 수 있고 어느 정도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별 사업마다 사업의 특수성이 존재하고 여건 변화까지 가미돼 새로운 쟁점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섞이는 논의과정은 보고서 내용이 모습을 갖추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연구진, 검토진, 관리진이 참석하는 내부 점검회의에서 모두가 똑같은 얘기를 한다면 시간을 들여 함께 내용을 점검하는 과정의 의미가 매우 작아질 것이다. 다른 전공 분야에서 다른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들이 저마다의 관점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분석방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논의하는 과정이야말로 보고서 내용을 단단하게 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된다. 자연스레 개인의 식견도 넓어진다.
그 과정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고민이 수반된 의견 개진이 있어야 하고, 합리적인 의견에 대한 수용적 자세가 갖춰져 있어야 하며, 의견 개진 및 수용에 대한 고생스러움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삐걱대면 논의과정과 결과는 부실해지기 십상이다. 제기된 의견을 고려치 않고 단순 경험치로 깔아뭉개거나 검토자에 대한 선입견을 토대로 필터링을 거쳐 곡해하는 등 수용적 자세가 부족할 경우, 말을 해봐야 입만 아픈 꼴이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회의는 형식적인 의견 개진으로 채워지고, 별도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한편 의견을 제시하거나 수용하는 태도에 대한 구성원들의 존중과 인정이 없다면 각자의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할 근원적 동력이 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공투 내 논의과정은 상당히 건강하다. 관리진은 다른 보고서와의 일관성을 살뜰히 챙기고, 그 와중에 간사는 원활한 회의를 위해 발로 뛰어가며 준비를 돕는다. 본인 사업이 아님에도 세심히 살펴본 뒤 의견을 제시하는 검토진에게 연구진은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그만큼 제기된 의견에 무게감을 느끼고 숙고를 거쳐 보고서를 수정한다. 바삐 흘러가는 일상 속 간만에 모인 회식자리에서는 수고한 이들에 대한 칭찬이 오간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공투는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따뜻한 말 한마디에 힘을 얻고 서로를 다독여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맡은 일의 성격상 기분 좋은 앵콜 요청은 애당초 있기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여럿이 한 곡씩 꿋꿋하게 뽑아가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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