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개혁을 추진해 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필수
대한민국의 '기적 만들기'는 현재진행형이 되어야...
기적 만들기(Making a Miracle). 1990년대 초에 로버트 루커스 교수(1995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한 기념비적인 논문의 제목이다. 이 글은 1960년까지 비슷한 수준의 저개발국이었던 한국과 필리핀이 이후 30년간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상술하면서, 한국이 만들어 낸 성과는 ‘기적’이라고 칭하기에 손색이 없음을 설명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당시까지 학계의 주류였던 신고전파 성장이론(Neoclassical Growth Theory)이 대한민국의 기적을 통해 현실 설명 능력에 한계가 있음이 드러나고,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이라는 새로운 조류가 나타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개발도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경제학 교편을 잡고 있었던 필자의 움츠렸던 어깨가 조금은 펴지는 순간이었다.
30여 년이 지난 최근, 세계은행(World Bank)의 대표적 발간물인 세계개발보고서(World Development Report)가 다시 한 번 한국의 ‘기적’을 소개하고 있음은 더없이 기쁜 일이다. 이번엔 저개발국에서 중진국이 된 사실을 뛰어넘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선진국으로까지 발돋움한 “성장의 슈퍼스타”라는 극찬을 받았다. 50년 이상 연평균 5%를 넘는 성장률을 기록한 유일한 나라라는 점도 언급됐다. 우리에겐 삼성전자 휴대전화, 현대차, LG전자 TV에 한류가 가세하면서 한껏 부푼 자부심에 날개를 달아 주는 칭찬이다. 그런 칭찬이 결코 실상을 과장한 것도 아니다. 소득지표뿐 아니라 치안, 건강, 근로여건, 공공서비스 등 대부분의 객관적 지표가 뒷받침하고 있다. 해외에 출장이나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가 꽤 괜찮은 나라라는 데에 입을 모은다. 필자의 지인 중 한 사람은, 정부가 청년층에 다른 지원 대신 해외여행을 지원해 주면 ‘헬조선’ 운운하는 청년들은 사라질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한다.
어떻게 한국은 경제학 이론을 뒤흔들 정도의 기적을 만들어 냈을까. 이번 세계개발보고서는 이를 ‘3i 전략’으로 설명한다. 저개발국에서 도약하기 위해 투자(investment) 확대를 적극 추진했고, 이를 해외에서 도입된 선진 기술과 융합(infusion)해 체화한 후에는 스스로의 혁신(innovation) 역량을 확충해 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제 발전단계에 맞춰 적절히 성장 전략을 변화시켜 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향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기존의 지배적 기업이나 상위 계층이 자원 배분을 왜곡하거나 시장을 독점하지 않도록 규율하고 제도를 확립하는 한편 시장 개방을 통해 기술과 자본을 유입시켜야 하며, 중소기업을 과보호하거나 대기업을 옥죄는 것에서 벗어나 생산성이 높은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흥미로운 분석이고 유용한 조언임이 틀림없다. 다만, 구성원들의 반발을 초래하기 마련인 정책 변경 혹은 개혁을 한국은 어떻게 구현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구현해 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특히, 권위주의 정부 시대와 달리 민주화된 현재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인기영합주의에 빠지지 않고 ‘창조적 파괴’를 수반하는 고통스러운 개혁을 추진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수적이다. 대한민국의 ‘기적 만들기’는 현재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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