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 콘텐츠개발팀
Q. 취임하신 지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하루도 여유를 느낄 틈 없는 바쁜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업무 보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한편,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며 KDI의 업무와 조직을 이해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KDI는 오랜 전통과 높은 연구 역량을 갖춘 기관인 동시에,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뛰어난 전문성을 지닌 조직입니다. KDI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직 전반은 물론 구성원 개개인의 역할과 역량까지 깊이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필 요했고, 앞으로도 계속 배워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Q. 오랜 기간 경제성장 분야를 연구해 오셨습니다. 이 분야를 주요 연구 주제로 삼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시카고대학교 박사과정 당시 지도 교수님이였던 로버트 루카스 교수님은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평가받는 분입니다. 제가 논문을 준비하던 시기, 교수님께서 주목하고 있던 국가가 한국이었으며, 특히 경제성장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 제게 ‘경제성장을 주제로 논문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당시 금융시장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특히 주식과 같은 금융자산의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그리고 그 결정 메커니즘을 통해 투자 수익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제안을 듣는 순간, 경제성장이라는 주제가 지닌 의미와 가치가 크게 와닿았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경제학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경제성장 연구야말로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저소득 국가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분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을 계기로 경제성장을 연구 주제로 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연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Q.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과 그 핵심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약 30년 동안 연평균 8%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지속했습니다.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고도성장을 이어 간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로버트 루카스 교수님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기적적인 성장’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성장이 다른 국가에서도 가능하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에 루카스 교수님은 새로운 경제성장 이론인 ‘내생적 성장 이론’을 제시했으며, 이후 저를 비롯한 많은 경제 학자들이 이에 대해 활발히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된 요소는 ‘인적 자본’입니다. 이는 근로자와 기업가가 교육과 학습을 통해 축적한 지식과 기술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들이 교육을 통해 인적 자본을 빠르게 축적했고, 이것이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끈 중요한 요인입니다.
Q. 취임사에서 강조하신 ‘진짜 성장’의 개념과 그 실현을 위한 정책방향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현재는 0%대에 가까운 수준까지 낮아졌습니다. 그동안 여러 정부가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지만, 기대에 부합하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총수요를 부양하는 방식에 대한 의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이를 ‘가짜 성장’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반면, 경제의 장기 성장률 자체를 높이는 정책이야말로 ‘진짜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에 머무르기보다,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무엇이 진정한 성장 정책인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요구되며, KDI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경제성장의 핵심 원동력은 인적 자본입니다.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1990년대 이후 둔화되었다는 사실은 곧 인적 자본 축적이 정체되었음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꾸준히 교육과 학습에 대한 투자를 이어왔죠. 즉 그동안 어떤 인적 자본 에 투자해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적 자본은 ‘모방형’과 ‘창조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모방형 인적 자본이 기존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능력이라면, 창조형 인적 자본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스스로 만들어내 는 능력입니다. 과거에는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컸기 때문에 기존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성장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기술 격차가 줄어들면서, 20년간 특허로 보호되는 선진국 기술을 더 이상 베끼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에 인터넷과 AI의 발전까지 더해지면서 기존 지식을 단순히 습득하는 방식의 경쟁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할 수 있는 창조형 인적 자본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과 기업, 국가 모두에게 필수적인 역량이자, 앞으로의 지속적인 성장과 생존에 직결되는 핵심 요소입니다.
Q. 원장님께서는 오랫동안 ‘창조형 수업’을 진행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창의적인 사고는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창의력을 타고나는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충분히 향상될 수 있는 역량입니다. 제가 교육 현장에서 활용해 온 방법은 ‘열린 문제’를 중심으로 한 수업입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제시하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답을 제시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초기에는 학생들이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지만,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점차 창의적인 사고를 시도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각자 고유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틀릴 수 있다’라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저는「어웨이킹」이라는 책에서 창의력을 키우는 일곱 가지 방법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책에 제시된 문제를 직접 풀고, 일곱 가지 사고 방법을 적용하는 과정을 꾸준히 반복한다면 누구나 높은 수준의 창의적 사고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Q.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경제 구조와 정책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AI 시대에 경제 정책 연구는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AI 시대에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 핵심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능력, 즉 ‘창의력’입니다. 경제학적으로는 ‘창조형 인적 자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경제 체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중요한 생산 요소로 작동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개인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그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제 정책 연구 역시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야 합니다. 국민 개개인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생산성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환경을 뒷받침하는 정책과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AI 시대 경제 정책 연구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Q.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를 제안하신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AI 시대에는 아이디어의 가치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국가 경제 규모에 맞먹는 가치를 창출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경우 2009년 상용화된 이후 약 15년 만에 2조 달러 규모로 성장하며, 우리나라 오천만 국민이 일년동안 피땀 흘려번 소득인 GDP와 맞먹는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디어는 쉽게 도용될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보호 장치가 충분하지 않은 환경에서는, 새로운 아아디어가 떠올라도 이를 공개하지 않게 되고, 이는 사회 전체의 혁신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한 것이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입니다. 이는 국민 누구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정부의 전산 시스템에 등록하면, 국가가 해당 아이디어의 소유권과 재산권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아울러 정부가 일정 금액으로 아이디어를 우선 구매하고, 이를 기업 등에 유통하는 구조를 통해 창의적 성과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 체계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더 많은 국민이 아이디어 창출에 도전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국가 전체의 혁신 역량 역시 크게 향상될 것입니다.

학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진리에 대한 열정과 겸손함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게 되더라도 그것은 방대한 진리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겸손함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멈추지 않고 배우며 연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진리를 향한 열정과 그 앞에서의 겸손함이야말로 학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Q. 앞으로 KDI를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KDI는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안 하는 ‘두뇌’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 경제는 제로 성장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으며, 이를 반전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KDI는 ‘진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석 역량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KDI는 세계적인 싱크탱크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KDI직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KDI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구성원 한 분 한 분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의 역량이 곧 기관의 경쟁력입니다. 앞으로의 연구는 보다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연구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원장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여러분이 좋은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KDI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창출되는 기관으로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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