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중심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 KDI 한국개발연구원 - 소통 - 매거진 KDl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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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 리서치 커튼콜 소비자 중심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2026 SUMMER VOL.69


진행 | 김태균 콘텐츠개발팀장

Q. 자기소개와 연구분야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이진국입니다. 저는 KDI에 들어온 지 12년이 되었고요. 산업·시장정책연구부에서 연구를 하다가 작년부터 공공투자관리센터 재정투자평가실 실장을 겸해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공공투자관리센터 내 재정투자평가실은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의 경제성과 타당성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시각으로 검증하여,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핵심부서입니다. 정부의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대형 국책사업이 적재적소에 추진되도록 돕는 재정의 파수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최근 KDI FOCUS에서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이 시사하는 유통정책의 전환 방향에 대해서 연구하셨는데요. 제도가 시행되고 10여 년이 지났는데 연구를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제도는 급격한 경제 성장 과정에서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국제적으로 매우 드물고 독특한 규제입니다. 2012년 도입 당시에는 대형마트가 전국 곳곳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전통시장에서 대형마트로 급격하게 쏠렸습니다. 이에 정부는 한달에 두 번 휴일에 대형마트의 영업을 금지하고, 대안으로 소비자가 전통시장을 찾아 소비할 수 있도록 의무휴업일제도를 시행하게 된거죠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유통시장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변했습 니다. 온라인 쇼핑, 새벽 배송, 배달 플랫폼, 그리고 중국 이커머스 (알리·테무) 등 강력한 대체 채널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제는 대형 마트가 쉰다고 해서 소비자가 전통시장에서 소비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구조가 된거죠. 오히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함께 침체되었고 온라인 쇼핑이 대체 채널로서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됐습니다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대구, 서울, 부산 등 일부 지자체가 의무휴업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전환하는 규제 완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바로 이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주말 휴업을 평일로 바꿨을 때 실제 소비자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분석함으로써, “현재의 의무휴업 제도가 변화한 유통 환경에서도 여전히 실효성이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시대에 맞는 유통 정책의 새로운 전환 방향을 제시하고자 연구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Q. 일반 소비자의 시각에서는 대형마트가 주말에 문을 열면 동네 전통시장으로 향하던 발길이 당연히 마트로 쏠리면서 전통시장이 타격을 입지 않을까?’ 하는 직관적인 우려가 들거든요. 실제 대형마트 평일 전환이 전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어땠나요?
직관적으로는 대형마트가 주말에 문을 열면 전통시장이 타격을 입을 것 같지만, 실제 연구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대형마트의 평일 전환 이후에도 전통시장의 매출에는 대체로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소비층과 소비 목적이 이미 서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저만 해도 주말에 아이들과 조치원 시장이나 공주 산성시장에 가본적이 있는데, 이때 전통시장은 물건을 사는 곳이라기보다 먹거리와 문화를 즐기는 체험의 공간입니다. 반면 생필품을 대량으로 사는 소비의 공간은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이죠. 대형마트가 주말에 문을 닫는다고 해서 소비자가 전통시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소비 채널인 온라인으로 이동할 뿐입니다또한 두 채널은 취급하는 품목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대형마트는 가공식품이나 공산품 대량 구매에 특화되어 있지만, 전통시장은 제철 수산물이나 소량의 신선식품, 그리고 상인과의 유대감을 원하는 수요가 확실히 살아있습니다결국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경쟁 관계가 아닌 소비 목적과 품목이 다른 독립적인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Q. 평일 전환 이후 대형마트의 매출은 7% 증가했는데, 이 증가분은 전통 시장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이동해 온 것일까요?
대형마트를 비롯한 준대형마트(SSM), 백화점 등의 매출이 모두 늘어난 배경에는 온라인 소비의 오프라인 이동이 있었습니다. 추가로 진행한 온라인 데이터 분석 결과, 대형마트가 주말에 문을 열자 온라인 쇼핑 매출이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흐름이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온라인 쇼핑에 친숙한 20대와 자녀가 있는 30~40대 맞벌이 가구를 중심으로 이러한 이동이 두드러졌습니다. 주말에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장을 보던 이들이 마트가 영업을 하니 오랜만에 같이 가볼까?” 하며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오프라인 유통만 존재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의무휴업 규제 탓에, 그동안 소비자들은 주말에 사실상 온라인 쇼핑을 강제당해 왔습니다. 하지만 규제가 완화되면서 소비자는 주말 선택권의 제약이 사라져 후생이 높아졌습니다. 가족과 함께 마트에서 시식도 하고 물건을 비교해 보며 주말 시간을 보내는 오프라인 쇼핑 특유의 재미와 활력이 되살아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Q. 박사님의 보고서에서는 대형마트가 주변 상권에 긍정적인 집객 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하셨습니다. 그 원리가 무엇인가요?
과거에는 소비자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중 하나를 선택하는 제로섬 게임이었지만, 지금은 유통시장의 40~60%를 온라인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 살 것인가, 오프라인으로 갈 것인가가 첫 번째 선택 항목이 된 것입니다이러한 상황에서 대형마트는 소비자를 집 밖(오프라인)으로 끌어 내는 앵커(Anchor, 정박지)’ 역할을 합니다. 일단 소비자가 밖으로 나와야 대형마트든 주변 상권이든 소비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대형마트가 주말에 문을 열어 온라인 이용자를 오프라인으로 유인하면, 그 집객 효과가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원리입니다. ‘유통 공룡이라 불리던 대형마트가 이제는 온라인에 맞서 오프라인 상권 전체를 견인하는 형님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실제로 대형마트가 주말에 영업을 하자, 마트 내에 입점한 안경점· 약국·식당 등 수많은 소상공인 점포는 물론이고 길 건너 골목 상권과 인접 쇼핑몰까지 매출이 증가하는 연계 소비가 나타났습니다전통시장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큽니다. 다만 한 달에 두 번 대형마트 문을 닫게 하는 방식이 과연 전통시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지, 이제는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합니다. 규제로 인해 오프라인 전체가 침체되는 부작용을 막고, 변화한 유통 환경에 맞는 실효성 있는 새로운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Q. 향후 유통 규제 정책은 어떤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까요?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과 심야 시간에는 온라인 배송(포장·반출 등)까지 아예 금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여야 모두 대형마트의 새벽 배송 규제를 완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하며 온·오프라인 간 규제 불균형을 해소하려 하지만, 소상공인 단체의 반발이 거세 입법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그동안 유통 정책 논의에서 정작 지갑을 여는 주체인 소비자는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소비자는 주말에 마트 이용을 제한당하며 자연스럽게 온라인 쇼핑을 경험했고, 시장의 축은 이미 온라인으로 넘어갔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정책은 소비자를 중심에 두고 어떤 선택권을 원하고 규제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면밀히 살펴 설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비 촉진과 유통 시장 활성화라는 실질적인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과거에는 선의로 도입되어 효과를 냈던 규제라도 유통 환경이 변하면 실효성이 변질되거나 역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규제는 결코 절대적일 수 없으므로, 저희와 같은 실증 연구자들이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고 있는지 계속 꼼꼼하게 따져가면서 보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Q. ‘선한 의도의 규제가 낳은 역효과를 실증한 연구라는 점에서, 박사님이 KDI에서 발표한 첫 보고서인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포장두부 시장에 미친 영향이 생각납니다. ‘두부박사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로 당시 유명했던 해당 보고서의 내용을 독자분들께 짧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당시 정부는 중소 두부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의 포장두부 매출액을 제한하는 규제를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두부 시장은 대기업 주력의 고품질 국산콩 두부와 중소기업 주력의 가성비 수입콩 두부시장으로 이미 명확히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대기업의 전체 매출액이 묶이자, 대기업들은 매출 한도를 덜 채우면서도 수익성이 좋은 수입콩 두부 시장으로 대거 진입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의 주 무대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며 중소업체들의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되었습니다. 더불어 소비자들은 원하는 국산콩 두부를 찾기 어려워졌고, 국내 콩 재배 농가까지 판로가 막히는 도미노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 연구는 대기업만 누르면 중 소기업이 살 것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규제의 위험성을 알렸습니 다. 이듬해 국산콩 두부는 적합업종 제한에서 해제되었습니다.
 
Q. 박사님의 과거 연구 이력을 보면 무척 다채롭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박사님만의 연구 철학은 무엇인가요?
저는 제 연구 분야를 미시, 거시 같은 전통적인 경제학의 틀로 나누기보다, 스스로를 시장 분석가혹은 생활 경제학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실제로 제가 KDI 대학원에서 강의하는 과목 이름도 우리 주변의 일상 경제(Everyday Economy Around Us)’인데요. 제 연구 이력이 다채로워 보이는 이유도 멀리 있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두부, 마트 영업시간처럼 우리 삶과 밀접한 시장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분석하기 때문입니다.
 
Q. 연구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찾으시나요?
제 연구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치 현재의 연구 주제가 자연스레 다음 연구의 아이디어로 이끌어 주듯이요. 모든 시작은 첫 연구였던 포장두부였습니다. 두부를 연구하며 중소현장과 실무의 흐름을 따라 다음 과제를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것이것이 제 연구가 다채로우면서도 저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는 비결입니다제조업체의 현실을 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대형 유통업체와의 갈등을 다룬 ‘PB(자체 브랜드) 상품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정부 지원의 실효성을 점검하게 되었고, 이들이 주로 진입하는 프랜차이즈 가맹 시장자영업 과 밀화 문제로 관심이 확장되었습니다이것이 다시 오프라인 상권 활성화와 맞물려 최근의 대형마트 의 무휴업일 연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연구 주제는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아이디어와 같습니다. 내가 한 분야의 연구에 깊이 몰입해 있을 때, 그 아이디어들이 자석처럼 저에게 와서 꽂힙니다현장과 실무의 흐름을 따라 다음 과제를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것. 이것이 제 연구가 다채로우면서도 저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는 비결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를 알려주세요.
현재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경제적 회복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충격 이후 업종과 점포별, 그리고 개인별로 회복의 속도와 정도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자금 조달 여건 같은 경제적 요인은 물론이고, 기존 데이터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사업주의 심리적 여건이나 회복 의지같은 개인적 특성까지 포착하고자 심리학 논문들을 참고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이를 통해 소상공인 특성에 맞춰 정부의 지원 정책이 어떻게 결합이 될 때 가장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가 이 부분들을 정책 제언으로 제시를 하려고 합니다.

Q.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급변하는 사회에서 연구 주제를 어떻게 설정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연구를 할 것인가 고민이 많으실 텐데 제가 하고 있는 방식을 하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시장그것이 두부 시장이든 유통 시장이든에는 항상 대기업과 소상공인 같은 공급자, 다양한 선호를 가진 소비자, 그리고 이들을 규율하는 정부의 제도(규제)라는 3가지 요소가 존재합니다중요한 점은 제도가 취지대로 잘 작동하는지 여부는 결국 공급자와 소비자의 상호작용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 소비자가 예상과 다르게 대응하거나, 공급자가 새로운 생존 전략을 취하면 규제의 효과는 완전히 뒤바뀔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 주위에 있는 시장들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시대를 꿰뚫는 재미있고 살아있는 연구 주제를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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