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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관치금융 2.0

중앙일보 2026.08.10

규제 본연의 목적과 무관하거나
보편적 원칙에 반하는 개입 잦아져
규제 환경에 대한 시장 신뢰 위해
오랜 관치금융의 잔영 거둘 필요

2015년 중국인민은행이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마침내 세계 1위로 도약한 무역 규모를 앞세워, 달러 패권에 맞설 위안화의 야심 찬 국제화 방안이 논의되었다. 그때 필립 로(2016~23 호주 중앙은행 총재)가 호주 통화는 별도의 정책 지원이 없었는데도 국제화되었다고 지적하자 분위기가 어색해진 기억이 있다. 통화 국제화는 정부가 이끌어야 한다는 시각과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라는 시각이 대조를 이뤘다.

이후 중국 정부는 위안화를 IMF(국제통화기금)의 SDR(특별인출권)에 편입시키고 무역에서의 결제 비중을 높여 왔다. 그러나 여전히 외환거래에서의 위안화 비중은 달러화는 물론 무역 규모가 중국의 5분의 1에 불과한 일본 엔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위안화 국제화가 더딘 이유는 관련 정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고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관치금융이 횡행하는 중국에서는 언제든 자본통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국제금융시장의 우려가 팽배한다. 특히 재산권 보장과 사법부 독립 등 법치와 제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우리에게도 관치금융의 오랜 역사가 있다. 국내 자본이 처절할 정도로 부족했던 1960~70년대에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외자 도입이 절실했다. 그럴 능력을 갖춘 민간기업이 거의 없었던 터라, 정부가 보증을 제공하여 외자를 도입하고 이를 적극 관리했다. 관치금융의 탄생이다. 금융기관은 정책자금을 배분하는 ‘현금출납기’에 비견됐다.

그러나 소득과 저축이 증가하면서 외자 의존도가 축소되었을 뿐 아니라, 단순했던 산업구조가 복잡해지고 경제 규모도 확대되면서 소수 당국자가 전체 투자재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시대가 저물어 갔다. 제대로 작동하는 금융시장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1980년대부터는 정책금융이 축소되고 은행 금리가 자율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관치금융의 유산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으며, 크고 작은 부작용을 초래했다. 1989~92년의 ‘투신사 사태’가 한 예다. ‘3저 호황’을 타고 상승세를 이어가던 주가가 고꾸라지기 시작하자 정부는 투신사에게 특별융자를 무제한 공급하면서 주식 매입을 독려하고, 이후에는 금융기관과 상장사의 팔을 비틀어 마련한 대규모 증안기금으로 주식을 사들였다. 그러나 결국 코스피는 절반 아래로 추락했고 투신사와 증안기금은 막대한 손실을 떠안았다.

1997년 외환위기는 더 비극적이었다. 자금이 기업으로 흐르면 ‘생산적’이고 가계로 흐르면 ‘비생산적’이라는 단선적 믿음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가계대출은 최대한 봉쇄하고 기업에 자금을 몰아주는 정책이 지속되었다. 그렇게 증가한 기업 대출은 차입에 의존한 과잉투자를 부추겼고, 결국 아시아 금융위기 와중에 대규모 금융부실로 연결되면서 6·25 이후 최대 위기가 촉발되었다.

이후 금융정책은 관련 규제 정비에 주력하고 금융기관 경영에 대한 직접 개입은 자제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관치금융의 유혹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규제의 목적을 ‘금융기관 자산 건전성 유지를 통한 시스템 전반의 안정성 확보’로 한정함으로써 자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금융시장을 조성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최근 시계가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금융 규제 본연의 목적과는 무관한 자의적 개입이 잦아지면서, 금융기관을 여타 정책 목적에 동원했던 관치금융의 흔적이 소환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너무 자주 바뀌어 따라가기도 벅찬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대표적이다. 이 규제는 누가 봐도 주택 가격을 겨냥한 정책이지 금융기관의 자산 건전성 확보와는 거리가 있다. 부실률로 평가한다면 주택담보대출은 주식담보 대출이나 중소기업 대출은 물론 대기업 대출보다도 안전한 자산이다. 주택 가격 안정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 평가가 많다. 설령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동산 시장과 금융의 절연’(금융위원회)이라는 극단적 발상은 충격적이다. 자산 형성 기간이 부족한 청년층이 스스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대출을 보태 주거할 곳을 마련하고자 하는, 지극히 기본적인 금융거래의 자유마저도 침해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명시적 규제 외의 압박도 많다. ‘생산적’ 금융을 위해 자금을 최대한 기업 혹은 주식시장에 공급해야 한다는 시각은 불안한 기시감을 조성한다. 저신용자일수록 낮은 금리를 부과하고 연체 채무는 가급적 많이 상각하는 ‘착한 금융기관’으로 변모하라는 요구는 금융기관에 복지기관의 역할을 덧씌우는 모습이다. 이런 환경하에서 금융기관은 정부 규제에의 순응 여부 점검에 급급했던 관치금융 시절의 모습으로 회귀해 갈지 모른다. 안 그래도 실물경제에 한참 뒤처진 금융 경쟁력은 더 후퇴할 수밖에 없다.

몇몇 정책 당국자의 지적 오만이나 섣부른 사명감이 복잡다기하고 거대해진 우리 금융시장을 더 잘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은 시대를 역행한다. 보편적 금융 원칙에 반하는 시장 개입은 국내 금융질서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평판도 훼손한다. 보다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규제 환경을 유지하여 시장의 신뢰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관치금융의 잔영을 거둘 필요가 있다. 

조동철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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