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내 비중 껑충, 경기 따라 크게 휘청
기업 넘어 국가 간 경쟁으로 판 커진 칩워
기술-인재에 투자하고 새 성장축 준비해야

반도체가 한국 경제를 끌어올리고 있다.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면서 수출과 성장률, 경상수지 등 주요 거시경제지표도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1분기 20.6%(328억3700만 달러)에서 올해 1분기 35.8%(785억1300만 달러)로 급등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8월 1일부터 20일까지 전체 수출액 552억 달러 가운데 반도체 수출 비중은 47.2%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금의 반도체 호황에 대한 의존도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가 잘될 때는 전체 수출과 성장률에 크게 도움을 주지만, 혹 메모리 가격이 하락하거나 세계 정보기술(IT) 투자가 위축되면 그 영향은 한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가 5월 경제전문가 5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러한 양면적 평가가 확인됐다. 대다수 전문가는 최근 반도체 호조가 거시경제지표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향후 경기에 대해서도 급격한 하락을 예상한 응답은 13.2%에 그쳤고, 81.3%는 호황이 당분간 이어진 뒤 완만하게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의 단기 전망에는 상당한 신뢰를 보인 셈이다.
그러나 산업구조의 안정성을 묻자 평가는 달라졌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에 집중된 수출 구조와 글로벌 경쟁 심화를 주요 위험 요인으로 지목했다. 응답자의 49.2%는 이러한 구조로 인해 향후 대외 충격에 대한 취약성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의 호황 자체보다 호황 이후에도 성장세를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글로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선 대만의 우위를 따라잡아야 하고, 메모리에서는 중국의 추격에 대응해야 한다. 기술과 자본, 산업정책 측면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도전도 거세다.
대만 TSMC는 최첨단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2025년에도 매출의 6.5%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며 2나노 이하 공정과 3차원 집적 기술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고부가가치 D램에도 자금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 CXMT도 범용 D램 생산 능력을 확대하며 한국 기업과의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법을 바탕으로 자국 내 생산과 R&D 투자를 끌어들이고 있으며, 일본도 기존의 소재·장비 경쟁력에 더해 첨단 반도체 생산 기반의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반도체 경쟁은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의 기술·인재·인프라 역량이 맞서는 종합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잘하는 산업을 더욱 잘하게 만들어야 한다. HBM 이후의 차세대 메모리, 인공지능(AI) 반도체, 첨단 패키징, 시스템반도체와 소재·부품·장비 분야에 대한 R&D와 인재 투자를 꾸준히 늘려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미래는 현재의 시장점유율보다 다음 세대의 기술을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호황기에 창출된 이익의 배분과 활용에서도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임직원의 기여에 합당하게 보상하는 것은 기업의 활력과 신뢰를 높이는 데 중요하다. 다만 경기 하강기에 대비한 투자 여력을 확보하고, 미래 기술과 인재를 위한 재원도 충분히 축적해야 한다. 오늘의 성과를 나누는 일과 미래의 경쟁력을 준비하는 일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동시에 자동차·조선·방산·바이오·로봇·에너지와 지식서비스 등 제2, 제3의 수출 엔진도 키워야 한다. 이는 반도체의 비중을 인위적으로 줄이자는 뜻이 아니다. 반도체가 성장하는 만큼 다른 산업의 생산성과 수출 경쟁력도 함께 높이자는 것이다.
정부 역시 세액공제 중심의 지원을 넘어 전력·용수·산업용지와 전문인력 공급, 산학연 공동연구, 중소·중견기업의 기술사업화와 해외 시장 진출을 종합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산업정책의 목표는 특정 기업이나 산업을 단기적으로 보호하는 데 있지 않다. 다양한 기업과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스스로 경쟁할 수 있는 기술·인력·인프라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반도체 호황은 분명 큰 기회다. 중요한 것은 이 호황을 일시적인 실적 개선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활용하는 일이다. 호황기에 미래 기술에 투자하고 새로운 성장축을 준비하는 경제라야 다음 하강기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반도체는 더욱 강하게 만들고, 한국 경제의 성장 기반은 더욱 넓고 다양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송인호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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